Fender Precision 1976, 프레시전이라는 환상




플랫와운드를 걸고 치는 프레시전의 서걱이는 소리는 일품이다. 
프레시전의 매력에 대책없이 빠져들게 된 건 스콧 디바인의 핑거링 덕분이다.

사실 연주자로서보다는 Scottsbasslessons의 Founder로서, 교육가로서 더 인지도 높은 (혹은 유투버...) 스콧이지만, 매번 짧은 재즈릭이나 솔로를 핑거링으로 나른하게 주물러버리는 영상을 보면서, 내가 알던 베이스와는 전혀 딴판의 악기를 보는 듯 했다. 
그런 스콧이 늘 갖고 다니며 찬양하는 악기는 다름아닌 프레시전 베이스였는데,
  새로운 세상을 목도한 기분이어서 종종 프레시전 꿈을 밤에 꾸곤 했다.

언제부턴가 나는 그의 교육 모토인 "take your playing to the next level"의 1차 종착지를 바로 저 핑거링! 으로 삼는 다짐을 하곤 했다. 저 톤, 저 feel... 스쿱톤의 화려한 슬랩 테크닉보다, 게인을 먹고 지글지글 끓는 듯한 8비트 연타의 달리기 보다는, 손가락과 혼연 일체된 듯한 살아 숨쉬는 유려한 연주가 내 지향점이었다. 


올해 1월이었는지 2월이었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타이밍이 좋아 이베이 비딩에서 이녀석을 배송료 포함 1150달러에 가져올 수 있었다. reverb price guide에서 같은 년식의 베이스들이 1,000불 중후반대 가격을 형성했던 걸 감안하면 나름 괜찮은 거래였던 건 분명하다. 

물론 76년의 펜더 악기는 명기도 아니고 소장가치도 그리 높지 않다. 검색해보니 그렇단다. 게다가 솔직한 심정으로는, 굳이 비싼 돈 주고 40년 전의 악기를 살 이유가 거의 없다. 요즘 비슷한 가격대에서 중고로 구할 수 있는 훌륭한 베이스도 많고, 굳이 펜더를 써야겠다면 리이슈 모델쯤 써도 충분하지 않느냔 말이다.

게다가 세월이 세월이다보니, 오래된 악기들은 Dings & Dents는 말할 것도 없고 나무가 썩는다거나 넥의 교정이 불가능해진다거나 하는 심각한 문제도 안고 있다. 
다행히 이 녀석을 세팅샵에서 점검해본 결과 악기가 전체적으로 중고틱해서 안 이뻐 보인다는 걸 제외하고는 멀쩡했다. 


Moollon 프레시전이 한때 너무 갖고 싶기도 하고, 어쩌다 야마하 6현이 쳐보고 싶기도 해서 이녀석을 팔려고 뮬에 반년간 게시해보았으나, 결국 모든 거래가 성사되지 않았다.

레릭 노브도 사다 박고, 픽업 커버도 두개나 사서 갖다 박고, 심지어 화이트펄 픽가드를 블랙 픽가드로 바꿔서 판매글을 올려보기도 했지만, 사람들은 못생긴 기타에 별 관심이 없는 것 같았다. 심지어 메이플지판이다 보니 로즈우드에 비해 고급스런 느낌이 확 죽어버리는 건 어쩔 수가 없나보다. 


내가 봐도 레릭이 영 멋없게 진행된 녀석이다. 나보다 좀 전 혹은 좀 후에 비슷한 가격대로 올라온 70년대의 프레시전들이 어느새 다 팔리고 없는 걸 확인하고 나서야, 아 이 녀석이 정말 못생기긴 했구나 하는 걸 확신했다. 아니면 내가 사진을 정말 못찍었던지.



이제 와선 팔아야 할 이유가 없어졌다. 
사람의 욕심은 참 끝도 없다. 좋은 악기를 구매하여도 그 악기에 deep dive할 생각보단 이내 다른 악기에 눈독을 들여 어렵게 구한 녀석을 어떻게든 팔아버리려 갖은 애를 쓰는 것이다.

게다가 요리조리 들어봐도 이 베이스의 소리는 좋다. 내가 막귀라 소리간 상세 비교할 능력도 없거니와  타 브랜드 동가격대의 베이스도 이 정도 쯤은 소리내줄 거라 생각하지만, 어쨌든 가격 만큼은 하는 베이스임에는 분명하다. 

분명한 사실은 이녀석은 내게 있어 분에 넘칠 정도로 좋은 악기이다. 파고, 또 파고 관리해주고, 파츠 바꿔주는 맛으로 오래 써야겠다.

한때는 오리지널리티가 중요하게 생각되었지만 시간이 흐르고 보니 그런 것은 콜렉터가 아닌 이상 아무 의미가 없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네같이 연주하는 사람들이라면 열심히 써먹어서 오리지널리티가 아닌 ownerity 같은 걸 더 내세워야 하는 게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레드고블린에다가 매트블랙색상 리피니쉬를 맡겨보려 한다. 매트블랙에 톨토이즈 픽가드를 장착한다면... 좀 더 멋진 모습을 한 펜더 프레시전을 만나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다보니 이 베이스기타로 공연도 참 많이 했다. 
많이 치고 많이 듣다보니 어느정도 이 악기를 어떻게 다루어야 하겠다는 감이 온다.


무슨 말이 하고 싶어서 글을 쓰기 시작했는지 모르겠다. 
앨더바디와 메이플지판을 얘기하고 싶었던 걸까. 그냥 오랜만에 악기 이야기를 해보고 싶었던 것 같다. 더이상 할 말이 생각이 나질 않는다. 사진이나 투척하고 끝내야지.



댓글

가장 많이 본 글